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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어떻게 NSC 등 과학저널 출판사의 노예가 되었나

과학자들이 순수하게 지식의 탐구로서 학문만을 추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지식을 혼자만 알고 있으며 안되니.. 서로 자기가 알아낸 연구내용을 교류하기 위해 편지 Letter로 과학자들끼리 지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편지들을 모아 출판하게 되었고, 어느새 연구결과를 출판계에 알리는 논문 Paper 퍼블리쉬 publish가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알리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널을 발행하는 전문적인 출판사도 있었고, 과학자들 무리인 미국물리학회나 미국화학회에서 학회지로 논문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초창기에 Nature는 대중잡지였고, Physical Review는 미국물리학회 학회지였습니다. 논문 형태도 좀 긴 Article부터 편지형식의 Letter, 짧은 Communication, Report까지 다양한 형태였습니다. 상대 논문에 반박하는 Comment까지 논문으로 인정을 받기도 합니다.

과학자의 자세 #1
과학자의 자세 #2
과학자의 자세 #3

20세기 과학 분야가 다변화되고 과학자수도 늘어나고.. 출판해야 하는 논문의 양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어떤 논문을 저널에 게재할 것인지 결정하는 프로세스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대개는 저널 지면의 제약 때문에 심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핑계를 대며 출판을 위해 Submit 제출된 논문을 저널 내부에서 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Peer Review라고 과학계 동료들이 심사에 참여했었는데, 어느 샌가 저널 에디터들의 소위 Screening 스크리닝이 강력한 장벽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학계만의 출판 문화도 과학자들에 의해 나름 합리적으로 잘 정착하는가 싶더니.. 21세기 들어서며 강력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가 과학계에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Impact Factor라는 영향력지수를 저널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임팩트팩터는 통계적으로 특정 저널에 출판된 논문 한편이 출판후 2년 동안 1년에 평균 몇번 인용되는가를 나타내는 지수라고 합니다. Nature가 40 정도 되는데 출판 후 2년간 일년에 40회 정도 인용된다는 뜻입니다. 물리학 유명 저널인 Physical Review Letters는 9 정도 되고 화학 유명 저널은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는 12 정도 되는 식이니 Nature 임팩트팩터의 1/4 정도 된다는 식으로 각 저널을 비교평가하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특정논문이 많이 인용되면 좋은 논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 임팩트팩터로 과학저널을 평가하니 평판이 좋은 저널과 안좋은 저널로 수치적으로 일렬 줄세우기에 성공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제 일반 국민들도 NSC (Nature, Science, Cell) 지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의 의미를 (황우석 박사 때문?)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임팩트팩터로 저널만 줄세우는 것이 아니고, 이게 개별 과학자의 연구능력을 평가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개별 과학자가 발표한 논문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 한참 후 수치가 나오는 논문 인용횟수 Citation을 기다리기 보다는 어떤 임팩트팩터를 갖고 있는 저널에 몇개의 논문을 출판했는지가 연구자의 평가기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공저자, 주저자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첫저자나 책임저자, 교신저자 등 주저자가 아니면 해당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확 낮춰서 평가하는 경향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단순 공저자로 참여하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니.. 언제부터인가 공동첫저자가 한명에서 두명, 세명까지 많아지기 시작했고, 교신저자도 맨마지막 저자만 인정되던 문화에서 두명, 세명, 네명까지 별표 (*)를 붙이며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 개인의 연구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연구비, 직업, 승진 등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과학자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울며 겨자먹기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 이렇게 되다 보니 각 저널들에게 임팩트팩터의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했고, 최상위 구간에 있는 NSC 저널들은 시스터저널, 자매저널들을 마구마구 만들어 하위저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명한 Nature의 자매저널들인 Nature Materials, Nature Physics 등 이제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Nature가 처음 시작했고, Science, Cell 지도 요즘 한창 자매저널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NSC 아래에 위치해 있던 출판사들도 그렇게 고사당할 수 없으니 비슷한 마케팅으로 대응했고요, 특히 미국화학회 (ACS)에서 공격적으로 저널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임팩트팩터를 무기로 Nano Letters로 공격적으로 저널 마케팅을 시작하더니 ACS Nano부터 ACS 시리즈 저널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미국물리학회도 최근 몇개의 저널을 추가하며 대응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물리학 헤게모니를 상당수 다른 저널에 빼앗긴 후였습니다. 특히 Nature Physics와 Nano Letters에 Physics Review Letters가 임팩트팩터에서 무참히 밟히는 걸 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습니다. 좋은 물리학 논문들이 더 높은 임팩트팩터를 향해 Nature Physics나 Nano Letters에 먼저 출판되는 것을 보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며 20년이 훅 지나갔습니다.

자.. 이제 2020년대 과학계는 자본주의의 정글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는 임팩트팩터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에디터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논문을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고쳐라 주문하기까지 합니다. 더 높은 임팩트팩터의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 에디터를 초청하고 안면을 트려고 노력합니다. 에디터의 스크리닝을 통과하는 것이 논문 출판의 가장 중요한 단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논문출판비라는 명목으로 돈을 갖다 바치며 유명 저널에 논문을 출판합니다. 온라인 저널이어서 종이 및 인쇄 비용이 들지도 않는데 수천불의 논문출판비를 지불하기도 합니다. 저널 지면 공간의 제한이라는 에디터의 일상적 핑계는 임팩트팩터를 높게 유지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고 거절하는 대신 다른 시스터저널에 논문을 제출하라고 권유까지 합니다. 논문 출판은 사업이 되었고, 유명 저널들은 앞다투어 과학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구비가 많은 과학자가 임팩트팩터가 높은 저널에 소위 NSC에 출판하기 더 쉬워졌습니다.

물론 이런 흐름에 반대되는 흐름도 있었고, 바로 과학자들만의 자유로운 지식교류의 장인 arXiv.org 가 있습니다. 고에너지 물리 등 일부 분야에서는 매우 활발히 이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과학계 문화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사업이 되다 보니.. 임팩트팩터가 높은 유명 저널이 되기 위해 무수한 출판사가 프리테터가 되어 과학자들을 유혹합니다. 최근에 사이비 학회 참가 및 사이비 저널 논문 출판이 사회문제가 되었죠.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매일 수십 통의 듣보잡 저널과 학회에서 논문을 제출해 달라는 스팸메일이 배달됩니다. 교신저자로 이메일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스팸메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거의 없습니다. 21세기 과학계는 풍부한 연구비에 비례해야 스팸메일을 지우며 창의력을 낭비하고 있고, 연구비라는 눈먼 곶감을 따먹기 위해 출판 자본주의와 사기가 활개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할까요? 과학을 다 안할 수도 없고.. 과학자 개인으로서는 당분간 직업을 얻을 때까지 승진이 끝날 때까지 영년직을 얻을 때까지는 주어진 룰에 맞게 최대한의 성과를 쌓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일단 체제에 순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평가에서 자유로울 때 진정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룸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영년직을 받으면 이제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동안 하던 관성대로 할 수도 있지만 뭔가 다른, 새로운, 관습을 거부하는 과학적 활동의 공간이 열린다고 보고 있습니다. Publish가 뭘까요? 자기가 알던 지식을 대중에 공유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아낸 사실을 블로그와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 공개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과학자의 출판 활동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21세기 과학자의 삶은 이렇게 팍팍해 졌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의 발견과 교류만으로 즐거웠고 만족했던 시절. 과연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요? 아마 상상속으로만 존재하는 시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NSC를 꿈꾸며 하루를 반성해 봅니다. 열심히 인류에 기여하는 논문이나 씁시다~ 유튜브와 블로그는 양념으로..